삼지창을 들고 있던 계집애처럼 이쁘장하게 생긴 애동 단골이 붉은 무복에 오방띠를 어깨에 대각선으로 걸치고, 허리에는 금으로 된 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꽃갓을 쓰고, 손에는 정미소 모형을 들고 구경꾼들 사이사이를 휘젓고 다니더니 단골판 중앙으로 뛰어든다. 어둠은 더욱 무거워지고 촛불은 시간을 태우고 있었다. 중앙으로 뛰어든 애동 단골의 몸이 허공으로 치솟자 징, 꽹과리, 북, 아쟁이 일제히 통곡했다. 산이 흔들리고 대나무 숲, 뭇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밤공기를 찢었다.
-본문 중에서
반세기에 걸친 한 집안의 흥망성쇠 과정에서 발생하는 욕망과 질투 그리고 돈에 얽힌 형제들의 피 튀기는 전쟁, 피보다 이념, 이념보다 돈을 좇는 현제들의 비극적인 대서사시, 이재구 작가의 첫 장편 소설 ‘포기할 자유’가 서점에 나왔다.
소설은 자본주의 시대 현대인이 추구하는 욕망이 강렬한 서사로 펼쳐져 독자들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만난다. 탐욕적 자본주의 욕망을 날것 그대로 대면할 수 있다.
작가가 펼쳐놓은 욕망은 현대를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자본주의가 가리키는 곳에 우리는 이상의 세계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천박한 자본주의 시대 최고의 계급에 이른 그 누구도 행복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선언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한 국가 안에서 계급은 더욱 공고해지고, 국제적으로는 힘의 논리로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다. 욕망의 특징은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가 그려낸 인물들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욕망이 들끓는 세상 속에서 처참하고 잔혹한 현실을 만나게 된다.
정미소 화재로 고향에서 쫓겨난 상준과 평산댁은 자식들을 잘 키워 환고향하겠다는 욕망으로 고달픈 삶을 지탱해 나간다. 끼니를 잇기 힘들지만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상준과 평산댁의 가르침으로 자식들은 의기투합하고 우애 있게 지낸다. 그러나 형편이 좋아지면 자신의 몫을 더 차지하려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평산댁의 자식들도 예외일 수가 없다. 피보다 이념, 이념보다 돈을 쫓는 형제들의 반목과 갈등을 통해서 치유 불가능한 환부를 드러내고 있다. 형제간의 시기와 질투는 이성을 마비시켰고, 거기에 돈까지 더 해져서 형제들의 참혹한 전쟁이 시작된다.
‘포기할 자유’는 자본주의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 현대인의 이상을 핍진하게 보여 준다. 소설은 3대에 걸친 한 가족의 부흥과 몰락의 과정을 펼쳐낸다.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독특한 몰입도와 흡입력으로 서사가 생생하게 전개된다.
작가는 ‘포기할 자유’를 통해 독자에게 단순한 감정의 동요를 넘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구조적 폭력성과 도덕적 딜레마를 찬찬히 들여다보게 한다. 그는 독자에게 말한다. “이제, 당신의 욕망은 누구를 삼키고 있는가?”
소설 ‘포기할 자유’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자본과 종교의 프리즘을 통해서 지속 가능한 희망이 있는지를 치열하게 묻는 현대인의 욕망 연구서이다.
이재구-저자소개
저자는 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했다. 역사·철학·경영·문학·종교 등 수천 권의 책을 읽은 독서광이다. 소설을 통해 피보다 이념, 이념보다 돈을 좇는 현대인들의 속성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사단법인 ‘국경없는학교짓기’ 단체를 설립하고, 회원들과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몽골 등에 작은 학교를 지어 기부하고 제3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후원하고 있다. 시와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영등포구 재활용센터 회장이다. 책 수익은 국경 없는 학교짓기에 기부돼 제3세계 어린이들 꿈을 응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